어둠은 망자의 손을 잡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숨 막히게 내리누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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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이것은 명백한 죽음의 냄새다. 7월 염천에 저고리 사이로 진땀이 주르륵 흐른다. 고개를 들어 창밖으로 부연 밤안개가 침묵처럼 내려앉는 것을 지켜보았다. 공기가 무겁다. 보이지 않을 뿐, 어둠은 망자와 손을 잡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숨 막히게 내리누르고 있다. 궐은 가위에 눌린 듯 꼼짝 않는다. 간간이 불길한 수선거림만이 들려올 뿐.”

“상이 붕어하셨다. 어느 죽음인들 예고가 있겠는가마는 너무도 황망한 죽음이었다. 상께선 나 죽은 후 사흘간 염을 하지 말라 이르셨지만 더위에 썩어가는 시신을 두고 볼 수 없다 하여 겨우 하루 만에 소염이 치러졌다. 혼전에 든 자들 사이에서 시신이 녹슨 쇠붙이마냥 푸르딩딩하더라는 뒷말이 언뜻 흘러나왔으나 소문은 오래지 않아 사그라들었다. 대비전에서 암암리에 단속을 한 탓이었다. 몇몇 입 가벼운 쥐들은 주둥이가 그을리었다. 궁궐은 금방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산 자들은 침묵하고 죽은 자는 말을 잃었다. 그렇게 꽉 막힌 수챗구멍처럼 말은 쌓이고 썩어갔다.
악취가 난다. 어둠 속을 응시하다가 또다시 코를 킁킁댔다. 그러다 어쩌면 이 냄새가 코로 맡아진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저녁 무렵 상궁이 은밀히 전하고 간 말이 떠올랐다. ‘또 나타났다 합니다.’ 벌써 나흘째, 도성 안에 괴물이 출몰하고 있었다.”


[환혼전, 원혼을 부르는 책]

예스24 https://bit.ly/3oSY5Pj
알라딘 https://bit.ly/3DSdK7K
교보문고 https://bit.ly/3nM2R1N
인터파크 https://bit.ly/3DJg94y

환혼전

환혼전

김영미

세자 이호와 대비전 궁녀 여리환혼전과 천구의 실체를 밝혀 대비를 살려내야만 한다!조선 왕조 사상 재위 기간이 가장 짧았던 왕 인종세자 시절의 그가 풀어나가는 왕실 미스터리대비전 소속 궁녀 여리는 폐서고에 들렀다가 세자의 삿된 취미에 얽혀들고 만다. 유교를 근간으로 하는 조선 국본의 취미는 다름 아닌 귀신의…

[환혼전, 원혼을 부르는 책]을 출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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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없는 플롯과 힘 있는 스토리 전개로 독자를 현장으로 불러내는 작가 김영미가 [김만덕] 이후 11년 만에 두 번째 역사 장편소설 [환혼전, 원혼을 부르는 책]을 내놓았다. 역사소설이라는 뼈대에 추리 요소를 가미한 이번 작품은 성실한 자료 검토와 작가 특유의 영화적 구성을 기반으로 정갈하게 그러나 치열하게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소설은 어떤 사료도 배반하지 않은 채 차곡차곡 결말을 향한 발판을 마련해간다. 이야기 속에서 모든 발판들은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플롯을 쌓아올린다. 작가는 역사와 추리라는 ‘장르’에 잡아먹히지도, 그것들을 잡아먹지도 않는 적정선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저 그것들과 어울려 놀 수 있는 자신의 이야기 터를 하나 구축했다. 그 무한한 공간 안에서 막힘없이 흘러가는 이야기 진행은 역사와 추리라는 장르가 주는 빳빳한 긴장감을 잊게 만든다. 무엇 하나 건너뛰어 넘어갈 수 없는 크고 작은 발판 위를 밟으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작가의 이야기 터 위에 불려가 역사의 현장에서 반짝이는 눈으로 단서를 주워 담고 있으리라 짐작한다.

[환혼전]의 오묘한 매력은 작가가 인물과 감정 그리고 각 사건을 다루는 방식으로부터도 발생한다. 소설의 배경은 조선의 궐이며 주인공은 세자와 나인이다. 자연히 화려한 정치적 갈등과 권력 다툼 그리고 그 중심에 선 인물 간의 애틋한 연정에 관한 이야기가 예상된다.

그러나 [환혼전]의 두 주인공인 세자와 나인 여리는 화려함의 중심에서 한발 비낀 위치에 스스로의 자리를 마련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상처 입고 잊혀버린 어둠들을 응시한다. 세자와 여리가 정을 쌓아나가는 방식은 로맨스라기보다 아이러니에서 발생하는 슬픔을 인식하는 이들끼리의 작지만 깊은 연대에 가깝다.

[환혼전]은 역사의 승자 혹은 패자를 조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승부처 아래 깔린 채 음지로 내몰려 역사 속에서 아예 지워져버린, “살아 있되 살아 있지 않은” 자들을 주목한다. 그러므로 진득한 왕실 미스터리는 그 전모가 한 꺼풀 한 꺼풀 드러날수록 통쾌하기보다 어쩐지 서글퍼진다.

문장 구성의 축축한 불안과 긴장 속에서도 승자가 밟고 선 그림자들을 응시하는 담담한 저자의 시선은 지금 우리 시대 어딘가에 귀신처럼 살고 있을 또 다른 어둠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환혼전, 원혼을 부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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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세자 이호와 대비전 궁녀 여리환혼전과 천구의 실체를 밝혀 대비를 살려내야만 한다!조선 왕조 사상 재위 기간이 가장 짧았던 왕 인종세자 시절의 그가 풀어나가는 왕실 미스터리대비전 소속 궁녀 여리는 폐서고에 들렀다가 세자의 삿된 취미에 얽혀들고 만다. 유교를 근간으로 하는 조선 국본의 취미는 다름 아닌 귀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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