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152018
 


미칠 만큼 집요하고 죽을 만큼 인내했던 수국(水國)의 지배자, 전시에 경제를 일으켜 조선을 구했던 경제 전문가, 이순신을 산수야 출판사에서 새롭게 만나다

산수야 출판사에서 출간한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는 ‘수국’의 건국과 명멸을 담은 역사서이다. 즉, 이순신이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한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그가 이룩한 수국의 성과가 훗날 어떤 모양새로 계승되는지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추적해 본 책이다.

혹자는 ‘수국도 좋지만, 또 이순신이냐?’라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이순신이라면 지겹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낡은 주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이순신을 고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순신이 살았던 치열한 삶의 여운(餘韻)이 과거종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방략(方略) 탐구로 언제나 승리했던 불패(不敗)의 리더십, 인습이나 전통에 매몰되지 않는 현상 변경의 지도력, 창조적 상황 대처 능력은 21세기인 오늘날까지도 면면히 살아 숨 쉬고 있다. 특히, 타인을 위해 스스로를 던진 고독한 사나이의 일생, 보람과 슬픔, 고통과 자기절제의 삶은 후인(後人)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아울러 전시에 장수의 몸으로 산업을 일으켜 백성들의 살 길을 열었던 이순신의 웅략(雄略)에서 독자는 오늘의 위기에 대한 해법도 시사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물의 나라, 수국(水國)과 이순신

‘물 위에 뜬 나라’가 있었다. 한반도에 역사가 생겨난 이후 가장 엄혹했던 시절, 버려진 해변과 섬, 바다 위로 쫓겨난 백성들로서 이룩한, 작지만 굳센 공동체였다. 조선국 안의 또 다른 나라, 가칭하여 ‘수국(水國)’이었다. 7년 전쟁이라는 일대 혼란기에 불꽃처럼 생겨났다가 종전과 함께 왕조체제 안으로 녹아들어간 ‘군·산·정(軍·産·政)복합체’가 곧 수국이다.

수국을 세운 사람은 이순신이다. 수국은 이순신이 7년전쟁에서 경제기반을 확립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된 배경이 되었다. 7년전쟁의 기간 동안 조정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 상황에서 이순신이 눈을 돌린 것은 ‘경제’였다. 이순신이 7년전쟁에서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경제’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둔전책’을 통해 버려진 땅을 일궈 백성과 군사를 먹여 살렸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바다 농사’를 본격화하였고, 국내외 해상무역에 나섰으며, 공업 생산력을 확충하였다.

이순신이 강한 적과 싸워 언제나 이길 수 있었던 비결 역시 수국, 즉 전쟁의 물적 기반을 튼튼히 구축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수국이라는 명칭은 저자가 즉흥적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이순신이 평소 사용했던 표현을 인용한 것이다. 다음은 이순신이 한산도 군영을 ‘수국’에 비유한 한시(漢詩)이다.

閑山島夜吟(한산도야음 : 한산도의 밤에 읊다)

水國秋光暮(수국추광모) 수국(한산도)에 가을 햇살 저무니
驚寒雁陣高(경한안진고)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군진 높이 날아가네
憂心轉輾夜(우심전전야) 가슴에 근심 가득, 잠 못 드는 밤
殘月照弓刀(잔월조궁도) 새벽달은 활과 칼을 비추는구나

‘상승장군(常勝將軍)’ 이순신의 진정한 힘

이순신은 분명 싸움을 잘한 명장이다. 7년이라는 전쟁 기간 동안 일본군과 스물세 번 싸워 모두 이겼다는 설(23전 23승)이 정설처럼 통한다. 이순신은 탁월한 전략 전술로 한산·명량·노량해전에서 승리함으로써 나라를 망국의 위기에서 구해냈다고 칭송한다. 그러나 이순신을 단순히 ‘전쟁 기술이 좋은 무장(武將)’으로만 규정한다면 그의 진가를, 그의 삶이 지닌 역사적 무게를 제대로 알 수 없다. 이제는 이순신을 바라보는 눈을 한 단계 높여야 한다. 당시 일본은 이순신의 함대보다 몇 배나 많고, 몇 배나 부유한 상대였다. 그런 강력한 적과 싸워 결코 패배하지 않았던 근본적 배경을 탐색하는 일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이룩한 공적은 참으로 웅장하였지만, 알려진 것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더 많다. 이순신의 성과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이 책의 본질적인 의미도 여기에 있다.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는 ‘상승장군(常勝將軍)’ 이순신의 진정한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 준다. 저자는 이순신을 전투에 능한 군신(軍神)이라기보다는 버려진 해변의 빈 땅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세운 대(大)경제인이자 건국영웅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단순한 장수가 아니라 창업군주에 가까웠던 이순신…….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했던 바닷가의 어리고 작은 나라 수국은 장군의 죽음과 함께 체제 안으로 소멸되었지만 한국과 동양의 역사에 긴 여운을 남겼다.

이순신은 ‘바다를 버린 왕국’ 조선에 해양의 가치를 일깨워 주었다. 그가 세우고 아꼈던 ‘물나라, 수국’은 종전 이후 삼도수군통제영으로 계승되며 우리 해양문화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훗날 식민지로 조락했던 그의 조국이 해양강국으로 재기하는데 있어 정신적 자부심의 원천이 되었다. (삼도수군통제영의 깊고 푸른 역사는 이 책의 속편 격인 <바다 지킨 용의 도시 삼도수군통제영>에서 저자가 자세히 이야기 한다.)

추천사_ 매경비즈 대표이사 윤형식

이순신을 경제전문가로 재조명한 책
이순신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웅 이순신’의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최근에는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2004년부터 2005년까지 KBS에서 방송된‘불멸의 이순신’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감동을 받기도 하고, 이순신의 어려웠던 상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순신은 ‘이순신=장군’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명장(名將)에 속합니다. 흔히 이순신을 영국의 넬슨 제독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넬슨 제독은 영국 정부의 든든한 지원을 받은 상태에서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연합 함대’를 격멸시킬 수 있었지만, 조선의 이순신에게는 조정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 7년전쟁을 치러야 했기 때문입니다. 즉, 넬슨 제독과 이순신은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제가 이순신에 관련된 서적을 볼 때마다 들었던 생각은 ‘이순신은 어떻게 7년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을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순간 저의 궁금증은 하나둘씩 풀려나갔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7년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수국’에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 책에서는 ‘한산수국’이 만들어진 후 이순신이 어떻게 경제기반을 만들었으며,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경기가 어려워질수록 CEO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순신은 CEO로서의 면모를 두루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이순신을 경제전문가로 보는 저자의 탁월한 안목을 느껴보고 싶다면, ‘제2부 한산수국에서 경제기반을 확립하다’ 부분을 반드시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지금까지 출간된 이순신에 관련된 서적에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경제전쟁’으로서의 7년전쟁에 대해 서술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이순신이 어떻게 경제전문가, CEO의 면모를 보였는지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는 경제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경제 위기의 시대에‘위기관리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 준 이순신에게서 위기극복의 해법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 책은 그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지금까지‘군사전문가’로만 알려졌던 이순신의 ‘경제전문가’적 자질을 재조명해 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순신의 죽음과 관련한 저자의 의혹 제기’부분과 난중일기를 비롯한 실록의 기록들이 실제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저자 나름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부분 등에서 오랜만에 ‘책을 읽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출판사 서평

조선의 양반 사대부들이 바다를 버린 지 2백년이 흘렀을 즈음, 조일전쟁(임진왜란)이 터지고 이순신의 한산수국이 등장한 것은 조선의 명줄을 늘려 주었을 뿐만 아니라 소멸지경에 몰렸던 ‘해양 DNA’를 다시 일깨워 준 계기가 되었다. 공도정책과 해금정책을 사실상 폐기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국의 존재기간은 너무 짧았던 탓에 그 힘을 국가의 온전한 정책으로 투사(投射)할 수가 없었고, 그나마 이순신 사후 물거품으로 사라졌다.

조선의 해양문화는 왕조가 멸망하기까지 삼도수군통제영이라는 작은 불씨에 의존한 채 위태롭게 이어져왔을 뿐 제대로 발양되지 못하였다. 한 마디로 조선의 해변은 왕조의 처음부터 끝까지 사대부가 살만한 땅이 못된다고 낙인찍힌 채 5백 년 동안 움츠러든 셈이다. 실학자로 분류되는 조선 후기의 이중환마저 그의 책 택리지(擇里志)에서 바다 가까운 고을들은 사대부가 살만한 곳이 못된다고 적고 있을 정도이므로 다른 선비들은 말할 것도 없다. 해변을 기피하고 천시하는 풍조였기에 조선은 19세기 후반부터 서세동점의 물결에 시달려야 했고 20세기 초입에 들어서는 서구 해양문명을 먼저 습득한 섬나라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고통을 겪었다. 19세기의 개화(開化)는 곧 개항(開港)을 통한 해양화에 다름 아니었지만 바다를 닫아걸었던 조선 체제로서는 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았고, 인재 또한 부족하였다. 조선 왕조가 망하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것은 해양 포기가 초래한 민족사적 비극으로 규정할 수 있다.

장한식 저자는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와 <바다 지킨 용의 도시 삼도수군통제영> 두 권의 책을 통해 이순신과 수국, 그리고 통제영이 남긴 조선의 해양 정신과 문화를 복원하고 있다.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에서는 이순신이 바다에서 조선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를 경제적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 해양의 가치를 파악한다. 그리고 이 책의 후속편인 <바다 지킨 용의 도시 삼도수군통제영>에서는 조일전쟁의 부산물인 통제영이 300년 가까이 유지되는 동안 조선 전반에 미쳤던 영향과 의미를 살피며 남해의 소도시 통영의 역사적 무게를 복원한다.

본문 중에서

‘물 위에 뜬 나라’가 있었다. 한반도에 역사가 생겨난 이후 가장 엄혹했던 시절, 버려진 해변과 섬, 바다 위로 쫓겨난 백성들로서 이룩한, 작지만 굳센 공동체였다. 조선국 안의 또 다른 나라, 가칭하여 ‘수국(水國)’이었다. 7년전쟁이라는 일대 혼란기에 불꽃처럼 생겨났다가 종전과 함께 왕조체제 안으로 녹아들어간 ‘군․산․정(軍․産․政)복합체’가 곧 수국이다. 수국을 세운 사람은 이순신이다. 8페이지

7년전쟁은 과연 기습이었는가? 그렇게 볼 수 없다는 것이 희극이자 비극이다. 분명 ‘통보된’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일본을 통일한 직후인 1587년 대마도주를 통해 조선 침공의 뜻을 피력하였다. 7년전쟁 발발 1년 전에는 더욱 분명하게 침략 의도를 알렸다. 1591년 3월, 일본에 사신으로 갔던 황윤길과 김성일 등이 귀국하면서 가져온 도요토미의 ‘서계(書契, 외교문서)’에는 명나라를 침공할 것이라는 결심을 통보하는 한편 조선은 중국과 일본, 어느 줄에 설 것인지를 결정하라는 협박이 들어 있었다. 이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인용해 본다. 23페이지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에 올랐지만 조정의 지원은 사실상 전무하였다. 병사를 모으고 먹이고 입히고, 함대와 무기를 만드는 전쟁 수행의 모든 과정을 스스로 처리해야 하였다. 나라에서 물자를 주지 않으면 백성들로부터 빼앗아 군량미와 병장기를 조달하는 것이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동양군대의 전통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달랐다. 107페이지

권력의 정점에 있던 선조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한산도 군영이야말로 단순한 지방 군사조직이 아니라 임금의 권위를 갉아먹는 또 하나의 조정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왕권수호와 사직(社稷)의 영속성을 최우선시하는 임금에게 한산수국은 잠재적인 도전자였고 백성들의 존경과 지지를 받는 이순신에게서 질투심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였다. 외적(外敵)에 변변히 저항도 못하고 국경으로 달아났던 임금에 비해 이순신의 행적은 너무도 당당하였다. 공고개주(功高蓋主)라는 말이 있다. 202페이지

이순신의 죽음을 면밀하게 검토해 보면 분명 음습한 그림자가 발견된다. 특히 손문욱이라는 인물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손문욱이 실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정유재란이 발발한 선조 30년(1597) 4월의 일이다. 처음 한동안은 이문욱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성(姓)이 생명만큼 중요하던 시절, 성씨가 오락가락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가 비밀이 많고 당당하지 못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손문욱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기록을(번잡하기는 하지만) 세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313페이지

‘삼별초 학습효과’는 고려 조정과 그 뒤를 이은 조선왕조로 하여금 해상세력을 철저하고 교묘하게 탄압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삼별초 소멸 이후 ‘해상왕국’은커녕 ‘해상세력’으로 부를 만한 집단은 더 이상 이 땅에 존재할 수 없었다. 약간의 자치권을 지녔던 제주도마저 조선조에 접어들면서 내륙(중앙) 정부의 완벽한 통제 하에 들어갔다. 삼별초 토벌 이후 고려와 조선 조정은 일관되게 해상세력을 거세해 나갔다. 377페이지

책의 말미에서 고급 해양문화의 양생(養生)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다로의 진출을 꺼리고 바다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천시했던 조선조의 악습을 이젠 말끔히 지워버리자는 바람에서이다. 해양대국이 된 오늘날에도 바다와 가깝거나 해상과 관련된 일들을 얕잡아 보는 악풍은 온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시대착오적인 해양천시 풍조를 없애고 해양문화의 고급화, 해양적인 것의 가치를 회복하는 일, 그럼으로써 경제위기를 극복할 또 하나의 방책을 제시하는 일이야말로 이순신이 ‘수국’을 세운 뜻을 이 시대에 되살리는 길이다.  396페이지

차례

추천사 | 이순신을 경제전문가로 재조명한 책
개정판에 부쳐
프롤로그 | 이순신을 보는 새로운 시각

제1부 이순신 7년전쟁의 중심에 서다

1장 7년전쟁의 재구성
‘통보된 기습’ 1592년 4월 13일 부산포
‘정보의 빈곤’ 바다를 버린 대가
도요토미의 실수, 일본의 착각
2단계 전쟁 – 일본, 수륙병진을 시도하다
침략군의 비극 “조선 수군을 몰랐다”

2장 이순신과 한산대첩
제법 용맹하나 국량은 부족한 장수, 원균
주도면밀한 선비형 무장, 이순신
‘조선의 살라미스’ 견내량과 한산바다
한산대첩의 숨은 공로자, 김천손
한산대첩의 숨겨진 진상’

3장 원균의 역설’ 이순신 삼도수군통제사 취임하다
이순신과 원균의 갈등, 불화
이순신 함대의 한산도 이진
제2차 진주성 전투와 수군통제사직 신설

제2부 한산수국에서 경제기반을 확립하다

4장 한산수국의 ‘건국’- 영역확보와 해변의 대개간
경제적 자립의 필요성
수군 군정체제 수립 – 수국의 영역을 확보하다
둔전책- 버려진 땅을 일궈 백성과 군사를 먹이다
둔전 개간과 조정의 반응

5장 한산수국의 경제전쟁 – 말업을 키워 전쟁비용을 조달하다
‘바다 농사’를 본격화하다
물고기 잡이 | 해조류 채취 | 소금을 굽다
국내외 해상무역에 나서다
유성룡의 중강 개시와 ‘이순신의 대외무역 개설’
공업 생산력을 확충하다
전선건조 박차 | 무기생산 확대 | 종이‧의류‧가죽 등 민수품 생산

6장 한산수국 독자행보 3년 6개월
강력한 인재풀을 갖추다
수군 독자 무과의 실시 | 인재 확보 주력 | 부정‧무능한 인재 축출
독자적 상벌체제를 확립하다
한산수국 ‘조선의 3분의 1’

제3부 1597년 이순신, 역사의 전면에 서다

7장 정유재란과 한산수국의 붕괴
선조, 이순신을 불신하다
조정과 일본군의 ‘이순신 죽이기’ 공모
체포당하는 이순신, 한산수국의 몰락
백의종군하며 재기를 준비하다

8장 청해진 옛터에서 수국을 재건하다
원균의 몰락과 이순신의 재기
‘기적의 싸움’ 명량대첩
보화도에 기지를 건설하다
‘제2의 수국’ 고금도 군영

9장 정치적 도약 – 이순신, 대명 수군도독에 제수되다
인재들의 운집
이순신, 명군의 신망을 얻다
명나라 수군도독에 오르다
대명 수군도독 이순신의 ‘꿈’

제4부 이순신은 죽고 조선은 살아남다

10장 이순신의 죽음과 수국의 체제 편입
이순신 ‘도독’ 제수와 조정의 불안감 증폭
머리 좋은 선조의 ‘자객 활용론’
수수께끼의 인물 ‘손문욱’
홀중비환 ‘갑자기 날아든 탄환에 맞다’
왕의 승리, 수국의 체제 편입

11장 수국의 계승 – ‘해변의 총독부’ 삼도수군통제영
종전 후 최대 논쟁 – 해방 본영의 위치 선정
두룡포에 통제영을 건설하다
통제사, ‘해상 총독’으로 격상되다
‘3만 6,009장졸과 548함대’의 병권을 쥐다

|책속의 책| ‘바다를 버린 나라 조선’
포상팔국에서 삼별초까지-한반도 해상왕국의 전설
공도정책과 해금령
기말이반본 – 이데올로기가 된 해변 천시
조선은 왜 대마도를 지키지 못했나?
“해변은 2등 백성의 땅”

에필로그 |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의 현재적 의미
참고문헌

지은이 : 장한식(張漢植)

통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신문학과(현 언론정보학과), 동(同)대학원을 졸업하고 1991년 KBS 기자로 입사해 사회부와 정치부 등 여러 부서를 거쳤고 베이징특파원을 지냈다. 이어 뉴스제작부장과 경제부장, 사회부장, 해설위원, 편집주간, 전략기획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의 격전지 견내량과 한산도 앞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통영시 용남면의 해변마을에서 태어난 저자는 석사학위 논문 제목이 <구한말 근대적 통신제도의 구축에 관한 연구>였을 정도로 한국사의 여러 분야에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을 집필한 가장 큰 이유는 이순신이 만든 한산도 통제영이 저자의 집 근처에 있기도 하거니와 ‘이순신이 싸운 바다’가 어떠했는지를 날마다 관찰하면서 자라서인지 기존의 역사 연구자들이 ‘문헌’에서 놓친 부분을 적지 않게 발견하게 되었고, 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욕망에서 시작되었다.
저자는 과거에서 미래의 비전을 찾을 수 있다는 견지에서 역사문제에 제법 천착해 왔던 바 1999년 『신라 법흥왕은 선비족 모용씨의 후예였다』를 저술하였다. 2015년에는 ‘나라의 크기로 상하(上下)가 정해지는 것은 아니며 작은 나라도 꿋꿋한 의지와 실력이 있다면 능히 큰 나라에 맞설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만주족 역사서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를 출간하여 식자층의 주목을 끌었다. 2018년에는 대한민국 해양사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차원에서 『바다 지킨 용의 도시 삼도수군통제영』을 저술하였다.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

장한식

미칠 만큼 집요하고 죽을 만큼 인내했던 수국(水國)의 지배자,
전시에 경제를 일으켜 조선을 구했던 경제 전문가,
이순신을 새롭게 만나다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는 ‘수국’의 건국과 명멸을 담은 역사서이다. 즉, 이순신이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한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그가 이룩한 수국의 성과가 훗날 어떤 모양새로 계승되는지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추적해 본 책이다.

혹자는 ‘수국도 좋지만, 또 이순신이냐?’라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이순신이라면 지겹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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