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도깨비 토부리, 도깨비도사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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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된 느티나무에서 태어난 나무도깨비 토부리. 아직은 수련 중이지만 언젠가는 스승님처럼 도깨비도사가 되는 게 꿈이다. 어느 날 토부리는 이상한 사건을 조사하러 갔다가 도깨비들 중 가장 세다는 불도깨비를 상대하게 된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는 힘으로 얼떨결에 불도깨비를 소멸시킨다. 그렇게 진정한 도깨비도사가 되는 듯 했으나……, 그 후 150년 동안이나 계속된 수련에도 쇠도깨비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해 스승님과 후배들의 심부름이나 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불도깨비 잡은 도깨비도사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기 직전, 토부리는 새로운 결심을 한다.

오행에 따르면 나무는 쇠를 이길 수 없다. 그러니까 아무리 수련해도 토부리는 쇠도깨비 한 마리도 소멸시킬 수 없다. 하지만 쇠도깨비 처치는 도깨비도사의 기본소양이다. 이대로라면 진정한 도깨비도사가 될 수 없을 텐데……. 방법을 궁리하던 토부리는 150년 전 소멸시켰던 불도깨비가 원래는 나무도깨비였다는 데서 힌트를 얻어 불을 일으키는 도술을 익히기로 결심한다. 모험을 시작한 토부리는 조선 방방곡곡, 구름 위의 신선궁전, 바닷속 용궁, 심지어 왜국 땅까지 누비고 다니며 불을 일으키는 궁극의 술법인 삼매진화를 익히기 위해 열심히 동분서주한다.

토부리는 세상을 누비며 신선, 해치, 청룡과 황룡 등 온갖 신비한 존재들을 만나 도움을 받는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은 불을 일으키는 재료가 바로 ‘따뜻한 마음’이라는 것! 그중에서도 공경과 사랑의 마음이 핵심재료라고 한다. 하지만 불을 일으킬 만큼 진실한 마음을 느끼는 것은 어렵기만 하고, 하필 그때 왜국의 쇠도깨비 오니들이 동해로 쳐들어와 토부리를 도와준 많은 이들이 위험에 처한다. 토부리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낼까? 진실한 우정과 공경, 사랑의 마음을 배워 진정한 도깨비도사가 될 수 있을까?


[도깨비도사 토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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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고대사 연구의 비극 ‘역사전쟁’의 뿌리를 찾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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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술을 둘러싼 한일 간의 갈등은 뿌리가 깊다. 특히 고대사는 타협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그래서 한일 고대사에 관한 글쓰기는 헤어나기 힘든 수렁에 빠져드는 일이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해답 없는 역사전쟁에 아예 뛰어들지 않는 것이 좋다. 이 싸움은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지극히 고통스러운 반면 반대급부는 사실상 없다. ‘돈이 되는 일’이 아니고 명예나 권력을 얻는 일은 더더욱 못 된다. 부귀영화와 무관한 영역이니 애당초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 여러모로 이롭다.

전쟁의 단초는 일본학자들이 열었다. 그들에겐 한일 고대사를 정치적으로 재단한 책, 일본서기라는 강력한 무기가 존재하였다. 학자의 타이틀을 단 ‘식민주의자들’이 한국사를 요리하였다. 그들이 한일 고대사를 ‘연구’한 이유는 군국주의의 식민통치에 ‘봉사’하기 위함이다. 이른바 황국사관(皇國史觀)이다.

황국사관에서 한국사는 처음부터 중국 한사군(漢四郡)과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로 출발하였다고 가정한다. 한반도의 운명은 힘센 외부세력이 지배해온 역사인 만큼 20세기에도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로 귀결되었다. 식민지배를 합리화하는 논리로 개발된 황국사관은 학문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조차 민망하다. 그나마 조금 양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고대사학자 이노우에 히데오(井上秀雄)는 “역사서는 어느 시대에나 현실의 정치동향에 민감하여 종종 역사 사실을 넘어 현실을 과거에 투영하기도 한다.”라고 실토하였다.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의 많은 수재들이 고대사 연구에 뛰어든 이유는 명백하다. 일제의 한반도 침탈에 이용된 황국사관을 극복하겠다는 민족적 분노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일 고대사연구는 흘러간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국격이 걸린 치열한 전투현장이었다.

수많은 ‘애국 학자들’이 일생을 바쳐가며 한일관계사에 천착하였고 그 결과 일본열도의 고대사는 한반도인들이 이룩한 것이라는 반격을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애국 연구자들은 일본서기에 나오는 임나는 대마도를 지칭한 것이라는 학설도 세웠고 열도에 삼한삼국의 분국(分國)이 존재하였다는 창의적인 학설로 일본의 역사학계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금강유역에 비류백제(沸流百濟)라는 또 하나의 백제가 존재하고 있었고 이들이 일본열도로 건너가 야마토조정을 일으켰다는 신선한 학설도 제시하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두 나라의 수많은 인문학 천재들이 ‘전사(戰士)’를 자처하며 지난 100년 동안 날카로운 공방을 펼쳤지만 거대한 숲에서 나무 몇 그루씩 타격한 수준일 뿐 싸움의 양상에 변화는 없었다. 전투적 연구집단 간에 진행된 한일 역사전쟁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승패는 갈리지 않았고, 승부 없는 전장에서 승자의 영광이나 전리품은 찾을 수 없었다. 책과 논문으로 펼친 한일 고대사전쟁… 이제는 흘러간 옛 노래처럼 지겹고 따분하고 왜소해진 느낌마저 든다.

길고도 치열했던 역사전쟁 탓에 고대사를 둘러싼 한일 간 인식차이는 쉽게 좁혀질 것 같지 않다. 한국은 일본열도가 AD 6세기까지만 해도 맨발로 다닐 정도로 후진적이었다고 본다. 통일정부가 없었고 가야와 백제의 도움을 받아 나라꼴을 갖춰 갔다는 입장이다. 야마토왜를 천자국으로, 한반도를 조공국으로 묘사한 일본서기는 모조리 부정한다.

반면 일본학자들은 굳이 열도의 사서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고구려가 세운 광개토대왕 비문과 중국의 역사서가 왜를 강국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5세기에는 세계적 규모의 고분을 조성할 실력을 보여주었다는 입장이다. 한반도 남부가 왜의 군사적 영향을 받았다는 논리를 굽히지 않는다.

평행선을 달리는 양측의 시각에서 접점을 찾기란 요원해 보인다. 한일 고대사는 식민지배라는 역사적 비극에다 양쪽 국가의 현실정치적 목적에 의해 더욱 오염되고 심하게 왜곡되었다. 1945년 이후에도 한일 양국의 고대사 통제는 여전히 강고하다. 기존 학설의 권위가 굳건해지면서 참신한 연구와 해석은 억압되었고 공식사관에서 벗어난 역사 논의는 거의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과 일본의 정통역사학자들은 어느 누구도 새로운 시각을 피력하는 모험과 손해를 감수하려 들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1세기에도 한일 역사전쟁은 진정되기는커녕 더욱 심화될 조짐마저 보인다. 특별히 예민하고 위험한 지뢰밭들이 이미 폭발하였다. 첫째는 ‘한반도 왜’를 둘러싼 논쟁이고, 둘째는 임나일본부설을 둘러싼 오랜 공방전이다. 그리고 셋째는 임나일본부설과 관련해 새롭게 뜨거운 감자가 된 영산강유역 전방후원분 문제이다.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시리즈는 이들 문제에 대한 해답 차원에서 마련되었다.

21세기 인공지능(AI)시대에 고대사 문제를 들고나온 이유는 무엇인가? 역사문제가 한일관계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근본이, 기초석(基礎石)이 바로 서지 않으면 하늘에 닿는 큰 탑도 붕괴하게 된다. 한국과 일본, 세계적 두 경제대국이 진정한 협력을 위해서는 이제 근본으로 돌아가서 재정비를 해야 한다. 근본의 재정비란 고대사에 대한 엇갈린 해석과 시각을 바로잡는 일이다. 동일한 사료를 다르게 읽어내는 양국의 역사해석은 장차 또 어떤 비극을 잉태할 것인가?

근본을 뒤집는 역사 연구가 없이는 황국사관의 논리를 극복하기란 불가능하다. 한국사학계 역시 식민사관을 청산하겠다는 의지는 굳세지만 자료는 불비하고 합리적 상상력은 부족하다. 심하게 헝클어져 해결의 실마리를 놓쳐버린 한일 고대사는 적당히 손봐서 고쳐 쓸 수준을 넘어섰다. 철저히 해체한 뒤 다시 지어야 한다.

일본의 역사왜곡을 극복하기 위해 일생을 투자한 애국학자들의 연구에 비하면 필자의 글은 깊이가 모자라는 데다 ‘애국적’이지도 못하다. 나는 국가주의 이념이나 한반도 출신의 시각에서 벗어나 가능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그리고 세계사적 관점에서 고대 한일관계를 조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일 두 민족이 함께 이룩한 영광의 역사를 기억함으로써 현재의 갈등에서 벗어나 상호협력의 미래상을 공동건축하기를 희망한다. 튼튼한 기초 위에 큰 기둥을 곧게 세워 한일 고대사를 재건축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일 두 나라가 평화롭게 살아간 시기는 갈등의 역사보다 길다. 한일 관계사의 대부분은 일방의 타방에 대한 지배나 종속보다 호혜평등의 시간이었다. 마름모꼴 바다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과 대륙발 기마민족의 정복이라는 양대 변수를 이해하면 실체가 더 뚜렷이 보일 것이다. 두 나라가 역사전쟁의 굴레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건강한 한일관계가 가능해질 수 있다.

인근 나라가 진정으로 협력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자존심에 상처가 나면 곤란하다. 유럽의 경우 영국과 프랑스, 독일 간에 승패의 역사가 엇갈렸던 덕분에 상호간의 콤플렉스는 거의 없다. 그래서 20세기 이후 협력의 시대로 진입하기가 용이하였다. 유럽과 대등한 역사를 지녔지만 동아시아는 다르다. 그중에서도 한일관계는 특히 복잡미묘하다. 고대사 부문에서 인식의 격차를 줄이지 않는다면 한일 두 나라의 진정한 우호협력은 난망하다.

전 세계가 블록화의 길을 걷는 시대에 한중일 삼국만이, 특히 한일양국이 역사분쟁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인근 국가가 협력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것은 모두를 피해자로 만드는 길이다. 2019년의 한일 경제전쟁에서 그 폐해를 톡톡히 실감하였다. 역사갈등을 해소하는 첫걸음은 편견에서 벗어나 정확하고 객관적인 과거사를 발굴하는 일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충고’이기도 하다. 산수야 출판사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시리즈 장한식 저자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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