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숨긴 한반도 정복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 개정판을 출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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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타이지와 시진핑

중국몽(中國夢)을 꿈꾸는 시진핑의 도박은 성공할 것인가? 시진핑과 중국의 미래를 알려면 청태종 홍타이지를 살펴보라. 시진핑은 ‘홍타이지의 성공 역사’를 재현할 심산이다. 홍타이지는 중국 역사에서 집단지도체제를 독재체제로 바꿔 성공한 유일한 군주이며 선대에게 물려받은 작은 조직을 가장 성공적으로 성장시킨 창업 2세 군주이다. 제2의 홍타이지를 꿈꾸는 시진핑, 400년을 건너뛴 그의 도박은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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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파장은 컸다. 40년간 지속돼온 중국의 집단지도체제는 허리가 부러졌고, 사라졌던 ‘황제의 망령’이 다시 대륙을 덮었다. 당초 2023년에 퇴임할 예정이던 시진핑은 ‘5년씩 두 번 연임’의 굴레를 벗고 적어도 2033년까지는 권좌를 지킬 생각으로 알려져 있다. 임기제한이 없는 최고 권력자의 미래는 외길이다. 결국 ‘독재자의 길’로 나아갈 것이 분명하다.

1976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사망한 이후 중국에서 독재자는 사라졌다. 덩샤오핑(鄧小平)이 권력을 이어받아 대륙을 지배하였으나 정교했던 덩은 ‘총구(중앙군사위 주석)’만 장악한 채 권력분점을 시도하였다. 당 총서기나 국가주석직을 사양한 덩은 살아생전에 권력을 장쩌민(江澤民)과 나누었다. 국가주석과 부주석의 임기를 제한한 1982년 헌법은 덩의 ‘작품’이었다. 장쩌민이 국가주석에 올랐지만 정치권력은 7~9명의 ‘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분점하였다. 이후 최고지도자인 국가주석은 10년 주기로 교체되었다. 후진타오(胡錦濤)를 거쳐 시진핑이 등극하기까지 중국은 집단지도체제로 통치되었다. 덩샤오핑 집권 이후, 독재자라고 부를 만한 권력자는 대륙에 존재하지 않았다.

1인체제를 구축한 시진핑의 위험한 도박

시진핑은 달랐다. 부패척결을 명분으로 정치적 라이벌들을 차근차근 솎아낸 시진핑은 마침내 집단지도체제를 무력화하고 1인체제를 구축하였다. 이어서 임기제한 마저 철폐하면서 사실상 황위(皇位)에 오르게 된 것이다. 시진핑의 행보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이나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의 한 중국전문가는 2016년에 발간한 책에서 ‘시진핑이야말로 인치(人治)가 아닌 법치(法治) 시대를 열 지도자’라고 칭송하였는데 불과 2년 만에 스타일을 구겼다. 40년을 거슬러버린 시진핑의 행보에 대해 서방과 타이완, 홍콩은 물론이고 대륙 내부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해서 독재의 문을 연 시진핑의 시도를 ‘시대와 민심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간단히 규정하는 것은 허전하다. 신중한 시진핑이 위험한 도박을 할 때에는 그만한 믿음과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한다.

시진핑의 정치 스승, 청 태종 홍타이지(皇太極)

새로운 황제를 꿈꾸는 시진핑의 도박이 성공할지 여부는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그의 의도는 짐작할 수 있다. “리더십이 안정되고 공고해야 중국몽(中國夢)을 이룰 수 있다. 이는 역사가 증명한다.” 시진핑의 정치 목표인 중국몽(中國夢)은 ‘중국이 미국이나 유럽을 제치고 세계 최강국으로 우뚝 서서 전 세계를 이끌겠다.’는 야심의 표현이다. 횡적(橫的)으로는(동시대 서방적 시각으로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시진핑의 행보지만 종적(縱的)으로(중국 역사를 시대적으로)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다. 비슷한 방식으로 성공한 역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청(淸) 태종 홍타이지((皇太極)이다. 독재의 문을 열어 제친 시진핑의 의도는 ‘홍타이지의 성공역사를 재현할 심산’이다. 지나친 억측이 아니다. 중국 역사가 비록 길다고 해도 집단지도체제의 사례는 매우 드물다. 더욱이 집단지도체제를 독재체제로 바꿔 성공한 군주는 홍타이지가 유일하다. 2012년 집권 이후 통치구도 변경 문제에 몰두해온 시진핑과 시자쥔이 홍타이지의 사례를 포착했을 것이다.

청나라의 실질적 창업군주 홍타이지를 통해 현대 중국의 작동원리 이해

홍타이지와 그가 걸어간 족적을 진지하게 공부하다 보면 시진핑의 ‘이해 못할 선택을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중국 지도부의 향후 행보도 제대로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원형(原型)은 만주족(滿洲族)이 세운 청나라 시대에 이미 완성되었고 만청(滿淸)의 실질적 창업군주는 홍타이지이다. 현대 중국의 작동원리를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만청의 역사, 그 중에서도 창업주인 홍타이지 시대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 400년 전 만주(滿洲) 거친 땅에서 몸을 일으킨 ‘강인한 족속’의 리더 홍타이지 이야기는 시진핑과 중국 공산당의 미래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중국이란 용(龍)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21세기는 중국시대이다. 2014년 중국의 GDP(국내총생산)는 10조 3천 500억 달러, 17조 4천억 달러의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이고 4조 8천억 달러인 세계 3위 일본의 2배 이상이다.(한국은 2014년 1조 4천 500억 달러였다.) 2019년에는 중국의 GDP가 20조 달러를 넘어서며 미국을 능가할 것으로 IMF는 예측하고 있다.(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이미 2014년 말 중국이 미국을 추월해 세계 제1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것으로 분석된다.) 경제력 외에 군사력과 외교력, 우주과학기술 등 총체적 국력도 미국에 비견할 수준으로 성장하였다. 14억 대국의 굴기는 가히 눈이 부실 지경이다. 승천하는 용(龍)의 기세 그대로이다. 유사 이래 수천 년을 ‘중국의 이웃’으로 살아온 우리역사에서도 이 정도의 변화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대사건이다.

현대 한반도인들은 대국굴기의 파장을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작은 덩치로 ‘이웃의 큰 나라’를 어떻게 다룰지는 과거의 조상들도 깊이 고민했던 주제이다. 고조선과 고구려는 맞서 싸우다 실패했다. 신라와 고려는 자주성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중국의 패권을 인정하였다. 조선은 중국을 내면으로 존경하며 깊숙이 섬겨 ‘신속(臣屬)의 도리’를 다하였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중국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홍타이지와 만주족에게 배우는 교훈

굳이 중국을 상대할 교훈까지 아니더라도, 만주족의 성공역사는 그 자체로 조망할 가치가 충분하다. 우선, 비슷한 잠재력을 지닌 형제민족의 위대한 스토리에서 ‘우리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아울러 만주족 이야기는 우리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란 점에서도 충실한 이해가 필요하다. ‘만주족의 성공 비결’은 ‘조선의 실패 원인’과 상통(相通)하기 때문이다.

같은 오랑캐였지만 순이(順夷)였던 조선과 180도 다른 꿈을 키웠던 역이(逆夷),만주족의 결단은 오늘의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된다. 그런데 만주족이 견지한 오랑캐 정신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용략(勇略)이 뛰어난 지도자의 선구자적 역할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 지도자는 이 책의 주인공격인 ‘아이신교로 홍타이지(愛新覺羅 皇太極 애신각라 황태극 1592~1643)’이다. 병자호란을 일으킨 장본인으로서 1637년 1월 30일 삼전도 들판에서 조선 왕(인조)을 무릎 꿇렸다. 그 결과 홍타이지는 ‘한반도 정복자’라는, 우리 역사에서 제외시킬 수 없는 인물로 스스로 자리매김하였다.

한반도와 악연으로 맺어졌지만 우리는 홍타이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한민족에게 치욕을 안긴 ‘기분 나쁜 원수’로 단정해 무시하거나 폄하해서는 곤란하다. 우리를 일거에 무너뜨린 인물을 통해 스스로의 문제를 제대로 연구하고 보완할 필요성이 다분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장차 또 다른 홍타이지가 나타나 ‘새로운 삼전도의 굴욕’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를 짓밟을 수도 있는 적(敵)은 아마도 ‘사람’이 아닌 ‘사건’의 모습으로 다가오겠지만…

지도자의 실력은 평시가 아니라 난세에 드러나는 법이다. 오랑캐의 용맹에다 지략까지 겸비했던 청태종 홍타이지는 중첩된 위기, 암울한 현실을 뚫고 신생국 후금의 새로운 활로를 찾아냈다. 홍타이지는 독립국을 목표로 삼았던 창업주 누르하치의 작은 노선을 답습한 것이 아니라 질적인 고양과 규모 확대를 통해 물려받은 소국을 강대한 제국으로 재창조하였다. 이런 점에서 홍타이지는 ‘창업주를 능가한 2세 경영’의 전범을 보여준 셈이니 현대 기업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홍타이지, 만주족의 미래 비전을 제시

소수의 만주족이 대륙을 성공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초석을 다진 인물은 이 책의 주인공 홍타이지이다. 그런 점에서 ‘만주족 성공역사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홍타이지는 1626년 부친 누르하치가 타계하고 금국 한(金國 汗)의 지위를 계승한지 10년 만인 1636년 대청제국으로 국체(國體)를 확대변경하고 황제가 되었다. 그리고 7년의 세월이 흐른 1643년 9월 21일(양력), 중원 정복의 대계(大計)를 마련한 뒤 세상을 떠났다.

시간의 흐름이 현대보다 느렸던 전통시대에 홍타이지가 다스렸던 17년의 세월동안 만주국의 발전 속도는 참으로 눈부시다. 자립기반을 마련하지 못해 앞날이 캄캄하던 북방의 소국이 어찌하여 전 대륙을 정복하는 최강국으로 성장하였는가? 나는 ‘최고 지도자의 역량이 훌륭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였다. 국가든 단체든, 기업이든 모든 조직은 최고 리더의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

리더의 수준이 곧 조직의 수준이다. 뛰어난 리더였던 홍타이지는 만주국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있었고 자신들의 강점인 전쟁수행능력을 100% 활용하는 ‘오랑캐다운 국가발전전략’을 수립한 다음 흔들림 없이 추진하였다. 아울러 새 나라가 나아갈 국가비전(대륙 정복)을 분명히 제시하여 부하들과 후계자들이 한길로 달리도록 안배하였다.

홍타이지, 창업주를 능가하는 2세 경영

답답하고 암울한 처지에서도 홍타이지는 대국 명나라를 결코 두려워 하지 않았다. ‘적이 100배나 크고 강할지라도 만주의 사내들을 당해내지는 못한다.’는 기백으로 맞서 나갔다. 만주국을 홀대한 자들에게는 반드시 빚을 갚겠다는 투지를 한순간도 버리지 않았다. 홍타이지가 이룩한 성과, 창업주를 뛰어넘은 2세경영의 실적은 사극(史劇)이 아니라 현대극이 될 수 있는 충분한 요소를 갖추었다. ‘창업주를 능가하는 창업정신’이야말로 홍타이지가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 출판사 서평


홍타이지와 만주족이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직시하라

만주족의 근현대사를 돌이켜보면 17세기 초 대륙을 정복하기로 한 홍타이지와 만주국 지도부의 결단은 용감하고도 적절했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나라의 미래가 불투명하던 시절에도 만주족 리더들은 좌절하지 않았고 최선의 방안을 마련하였다. 그들은 100배나 많은 인구에 경제력에서도 월등한 중국에 위축되기는커녕 오히려 정복을 하겠다는 야심찬 국가목표를 세웠고, 온 민족이 한마음으로 뭉쳤다. 그리고 온갖 도전을 물리치고 자신들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만주족의 역사, 특히 누르하치와 홍타이지를 거쳐 강건성세까지 200여 년을 반추해 보면 ‘위대한 성공’의 비결은 분명해진다. 상대가 아무리 크고 강해도, 사안이 아무리 위험해도 두렵지 않다는 오랑캐의 기백, 스스로의 강약장단(强弱長短)을 파악해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의 방안을 도출해 내는 지략, 그리고 앞사람의 업적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창업정신의 견지, 세 가지로 귀결된다. 대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가진 힘을 마음껏 발산하는 새로운 긴장의 시대, 상대적 소국들에게 필요한 교훈이기도 하다.

역사는 현재와 미래를 보는 창, 부끄러운 역사를 직시하여 조망하자

조선은 병자호란 때 한번 망한 셈이다. 오랑캐라고 얕봤던 족속에게 짓밟혀 수백 년간 부끄러워했다면 우리는 실패원인부터 스스로의 약점까지 철저히 분석했어야 마땅하다. 한반도와 악연으로 맺어졌지만 지금 우리는 홍타이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한민족에게 치욕을 안긴 ‘기분 나쁜 원수’로 단정해 무시하거나 폄하해서는 곤란하다.

4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만큼 병자호란의 굴욕을 제어할 수 있는 심적 여유가 생겼다. 만주족을 라이벌로 여길 필요성은 사라졌고, ‘오랑캐에 항복했다’는 마음의 상처도 아득한 옛 기억일 뿐이다. 이제라도 홍타이지와 만주족의 혈관이 펄펄 뛰던 시대상과 조선을 침공한 배경, 당대 동아시아의 국력 동학(動學)을 객관적으로 조망해야 한다. 홍타이지와 만주족이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직시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역사는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보는 창(窓)이기 때문이다.

대국굴기에 맞설 ‘오랑캐 정신’의 재발견

‘집단사유(集團思惟)의 차이’, 조선의 지배층이 즐거이 명나라의 신하가 되기를 바랐다고 한다면 만주의 지도부는 반대로 명을 정벌하고 지배하겠다는 야심을 키웠다. 조선은 중국을 ‘하늘(天)’로 보고 섬기려 한 반면 만주족은 정복할 ‘땅(地)’으로, 지배할 대상으로 간주하였던 것이다. 충효의 유교이념이 구현되는 예의지국을 건설함으로써 작은 중화(小中華)가 되기를 희망했던 조선은 오랑캐이면서도 오랑캐 근성을 버린 이른바 순이(順夷), ‘착한 오랑캐’였다. 스스로를 좁은 울타리에 가뒀던 탓에 조선은 시간이 흐를수록 잠재능력 이하로 작아지고 약해져갔다.

하지만 만주족은 100배가 넘는 인구에다 비교할 수 없이 부유하던 명나라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격차에 기가 죽지도 않았다. 역이(逆夷), ‘나쁜 오랑캐’를 자처했던 만주족은 스스로를 작지만 강한 족속으로 단련시켰던 까닭에 어느 순간 조선이 넘볼 수 없는 강력한 존재로 성장했던 것이다. 두려워할 만한 상대를 겁내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 바로 ‘나쁜 오랑캐 정신’이다. 이웃대국이 굴기하는 오늘날, 대한민국에 요구되는 이념이기도 하다.

본문 중에서

새로운 황제를 꿈꾸는 시진핑의 도박이 성공할지 여부는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그의 의도는 짐작할 수 있다. “리더십이 안정되고 공고해야 중국몽(中國夢)을 이룰 수 있다. 이는 역사가 증명한다.” 시진핑의 정치 목표인 중국몽(中國夢)은 ‘중국이 미국이나 유럽을 제치고 세계 최강국으로 우뚝 서서 전 세계를 이끌겠다.’는 야심의 표현이다. 서강대 사학과 전인갑 교수는 중국몽을 ‘제국몽(帝國夢)’이란 말로 설명한다. 8페이지

“만주땅의 소국<後金>이 세계 최강국<淸>으로 도약한 비결은 일관이고 효율적인 유일(唯一) 리더십을 구축한 덕분이다. 홍타이지의 성공경험을 우리 시대에 재현해 보자.” 쉬자쥔의 결론을 대략 이러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홍타이지는 시진핑의 ‘정치적 스승’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치 선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9페이지

지도자의 실력은 평시가 아니라 난세에 드러난다. 오랑캐의 용맹에다 지략까지 겸비했던 홍타이지는 중첩된 위기, 암울한 현실을 뚫고 새로운 활로를 찾아냈다. 높은 정치력으로 급한 불을 끈 다음 대대적인 내부정비에 착수하였다. ‘선내수 후외양(先內修 後外攘)’이란 말이 있다. 106페이지

1632년 홍타이지의 남면독좌 시행은 집단지도체제를 1인체제로 바꾼 2018년 시진핑의 ‘헌법 개정’과 외견상 유사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 시진핑에게 홍타이지야말로 정치적 스승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시진핑의 정치실험이 홍타이지의 결단과 같은 긍정적 효과를 거둘 지는 미지수이다. 홍타이지 시대와 시진핑 집권기 사이에는 400년이라는 간극 뿐 아니라 국가규모, 반대세력의 결집력 등에서도 적잖은 차이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140페이지

적은 인구의 만주국이 군사강국으로 발전하고 마침내 중원 정벌의 대계를 세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자신들이 비교우위를 지닌 ‘전쟁기술’을 국가 성장동력으로 삼았다는 데 있다. 전쟁을 소모전이 아닌 최대이윤을 남기는 생산전으로 만드는 시스템을 갖춰 국가재정의 건강성을 유지하면서도 대외(對外) 파괴력을 극대화한 것이 전쟁산업 육성전략이다. 170페이지

수백 년 간 오랑캐에게 문을 열지 않았던 산해관을, 만주국은 억지로 깨뜨리지 않고 유유히 넘어갔다. 한족으로써 한족을 제압하는 이한제한(以漢制漢)의 결과였다. 오랑캐로써 오랑캐를 견제한다는 한족의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되받아친 전술이다. 도적군대와 명 유신(遺臣)의 갈등 속에 산해관은 저절로 열렸고, 모든 준비를 끝내고 기다리던 만주국은 곧바로 중원전역에 군력을 투입해 통치력을 확보하였다. 도적을 활용한 대륙정복… 차도살인의 완성이었다. 296페이지

17세기 초 세계 최강의 군대를 보유한 국가와 가장 대책 없는 나라가 맞붙은 전쟁이 병자호란이다. 조선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군사강국 청과의 전쟁으로 치달은 근본배경은 무엇인가? 당시 조선의 천하관(天下觀)이 청의 패권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409페이지

차례

프롤로그 – 왜 홍타이지인가? _ 5
시진핑의 위험한 도박|시진핑의 정치적 스승, 청 태종 홍타이지|‘나쁜 오랑캐’ 만주족의 대궐기|중국이란 용(龍)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만주족의 성공 비결, 오랑캐 전략|홍타이지, 역사가 숨긴 한반도 정복자

Ⅰ 은(銀)의 축복 … 누르하치 후금 건국 _ 25
1 _ 은이 뒤흔든 16∼17세기 동아시아 _ 27
백은(白銀) 대박, 동서무역 확대|은의 중국 유입과 은본위제(銀本位制) 확립|은의 유입과 여진사회의 변화|백은의 반격, 중국의 위기
2 _ 백두산 인삼전쟁 만주의 승리 _ 51
1595년 조선-건주(建州) 인삼외교|조만(朝滿) 인삼전쟁, 만주가 주도하다|농본국(農本國)과 중상국(重商國)의 차이
3 _ 상인에서 장군으로 … 누르하치의 굴기 _ 67
추장의 아들, 무역으로 입신하다|누르하치의 기병(起兵)|만주 땅의 칙서전쟁(勅書戰爭)|욱일승천(旭日昇天) 누르하치 ‘여진통일’ 박차
4 _ 400년 만의 만주 독립 … 성과와 한계 _ 87
후금 건국, 사르후 전투 승리|명의 경제봉쇄와 후금의 요동 장악|한족의 반발, 만주국에 켜진 ‘빨간불’|원숭환의 등장 … 넘지 못한 영원성

Ⅱ 홍타이지 내부개혁, 후금의 재탄생 _ 105
5 _ 홍타이지, 지략으로 집권 성공 _ 107
“천하를 훔친 도적”|궁정의 외톨이, 실력으로 중망(衆望) 얻다|불타는 권력의지로 한위(汗位)에 오르다
6 _ 담담타타(談談打打) 전술로 최악 위기 돌파 _ 121
대명(對明) 평화제의로 시간을 벌다|한인 포용정책, 요동 농사 재개|급한 불끄기 ‘정묘 동정(東征)’
7 _ 중국식 체제정비, 절대권력 확보 _ 135
팔왕공치(八王共治) 폐기, 남면독좌(南面獨坐) 관철|팔기 개조, 군사력 장악|유교식 관료제 도입, 한인(漢人) 지식층 포섭|한군기(漢軍旗) 신설 …‘요동한인(遼東漢人)’의 등장
8 _ 만주 제일주의 구축 _ 153
‘여진’을 버려 ‘만주’를 얻다|만주문자(滿洲文字) 개량|복식·두발 ‘민족 정체성’ 강조|라마불교로 범(汎)북방 사상통일

Ⅲ 전쟁으로 국가 발전 … 오랑캐 전략 시동 _ 169
9 _ 철기(鐵騎)에 홍이포, 수군 더하니 천하무적 _ 171
10만 철기군단 구축|홍이포(紅夷砲) 입수|수군(水軍) 확보
10 _ ‘돈을 버는 전쟁’ … 약탈로 경제부흥 _ 187
전체 인구의 10%가 군대였던 나라|전쟁은 취업, 약탈은 봉급|이윤 높은 전쟁산업 … 강해지는 만주국
11 _ 몽골 장악 … 활로 찾은 중원 공략 _ 207
명을 능가한 군사강국 북원(北元)|왕족간 결혼 장려 … 만몽 연대 강화|막남몽골 정복과 중원 공격 새 루트 확보|릭단칸 제압, 전세국새(傳世國璽) 획득
12 _ 조선 정벌 … 대명체제(大明體制) 끝장내기 _ 223
대명체제 종식 알린 국제이벤트|친정(親征) 승부수로 황제권위 회복

Ⅳ 천명(天命) 내걸고 중국 정복 _ 233
13 _ 황제국 대청(大淸) 창건, 시대교체 선포 _ 235
대원옥새 입수 ‘하늘의 뜻’ 선전|몽골대칸(大汗) 승계|대청제국(大淸帝國) 출범
14 _ 끝없는 ‘벌(罰)’ 골병든 명나라 _ 247
외곽을 때려 중심을 허문다|1627년 영금(寧遠·錦州)전투 실패, 벌명(伐明)작전 변경|제1차 중원 공격(1629년 10월~1630년 2월)과 원숭환의 몰락|대릉하성 포위전 성공(1631년 8월~10월)|중원 3연전(1634년, 1636년, 1638년)에 중국 ‘그로기’|송금(松山·錦州)전투 승리(1640년 3월~1642년 4월)|‘일방적 약탈’ 제5차 중원 공격(1642년 10월~1643년 7월)
15 _ 도적떼를 키워 천하를 뒤흔들다 _ 271
북중국의 대기근과 도적떼 출현|만주의 잇단 침공과 도적떼 확산|유적(流賊)의 창궐|토벌전 실패와 ‘유적 세상’ 도래
16 _ 차도살인 전술로 산해관을 넘다 _ 295
이자성 북경 진공, 명나라 멸망|홍타이지 사망, 도르곤(多爾袞) 집권|이자성 제압, 북경으로 천도|‘도적 소탕’ 명분으로 천하제패

에필로그 – 만주족의 중국 경영 268년 _ 317

책 속의 책-병자호란, 피할 수 있었던 어리석은 전쟁 _ 327
배경-외교의 실패 … “전쟁으로 결판내자”_ 329
서인(西人)정권 등장, 원리주의 강화|갈등 관리 실패…높아가는 전운|준비 없는 결전론 득세|만주국의 최후통첩 무시

과정-군대와 붓대의 싸움 … 조용한 전쟁, 시시한 승부 _ 355
신속 진격 vs 빠른 도주 …‘전투 없는 전쟁’|포위당한 남한산성, 치열한 내부싸움|국토 한복판에서 길을 잃다|최후의 일격 ‘강화도 함락’

결과-무릎 꿇은 조선, 천자(天子)가 된 오랑캐 _ 377
휴전회담 실기, 항복조건 악화|삼전도(三田渡)의 ‘굴욕’

결론-화이론(華夷論)이 부른 비극_ 409

참고문헌 _ 415

지은이 : 장한식(張漢植)

서울대학교 신문학과(현 언론정보학과)와 동(同)대학원을 졸업하고 1991년 KBS 기자로 입사해 사회부와 정치부 등 여러 부서를 거쳤고, 베이징특파원을 지냈다. 귀국 후 뉴스제작부장과 경제부장, 사회부장, 해설위원, 편집주간, 전략기획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장한식 저자는 중국특파원으로 일하면서 다양한 통로로 만주족과 접촉하였고 그들의 역사와 현실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중국이 굴기하면서 역사문제나 영해, 영토문제 등으로 우리에게 적잖은 스트레스를 가하는 상황에서 만주족의 ‘오랑캐 정신’은 소국이 대국을 어떻게 대할 지에 대한 좋은 교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만주족 이야기’를 썼다. 나라의 크기로 상하(上下)가 정해지는 것은 아니며 작은 나라도 꿋꿋한 의지와 실력이 있다면 능히 큰 나라에 맞설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책이 2015년 출간한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이다. 개정판에서는 시진핑 정권의 형태가 과거 홍타이지의 성공 역사와 어떻게 같고 다른지를 적시하는 등 현재 상황과의 비교 부분을 추가해 흥미를 더하였다.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

장한식

21세기는 중국시대이다. 2014년 중국의 GDP(국내총생산)는 10조 3천 500억 달러, 17조 4천억 달러의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이고 4조 8천억 달러인 세계 3위 일본의 2배 이상이다.(한국은 2014년 1조 4천 500억 달러였다.) 2019년에는 중국의 GDP가 20조 달러를 넘어서며 미국을 능가할 것으로 IMF는 예측하고 있다.(구매력평…

청나라 황제들은 어떻게 중국 대륙을 정복하고 지배했는가? 누르하치, 홍타이지, 순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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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족, 만주족이 중국 대륙을 정복하고 지배한 역사는 한편의 드라마다. 어떻게 백만이 채 안되는 소수 민족이 거대한 중국 대륙을 정복하고 지배할 수 있었을까? 많은 역사학자와 저자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청나라 제국의 열두 황제들, 그 중에서도 청 태조 누르하치, 청 태종 홍타이지, 순치제 푸린 3대에 걸친 청나라의 굴기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청 태조 누르하치
산수야 출판사에서 출간한 [청나라 제국의 황제들]에서 저자 옌 총니엔은 누르하치 편에서 청나라(후금)를 세운 누르하치의 10대 공적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여진 통일, 동북 통일, 만문 창제, 팔기 제도 창설, 만주족 형성, 후금 수립, 군제 재정비, 유화정책 제정, 사회개혁 추진, 심양 천도.

그리고 누르하치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을 ‘천합(天合), 지합(地合), 인합(人合), 기합(氣合)의 실현’이라고 본 [청나라 제국의 황제들] 저자는 맹자가 말한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和)의 세 요소와 개인의 대업을 성공할 수 있는 기본 소질 ‘기합(氣合)’을 덧붙여 누르하치와 여진족의 성공을 분석하고 있다. 일생 동안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승승장구하던 누르하치가 영원성 전투에서 명나라 장수 원숭환에게 패하는데 저자가 분석하는 패배의 원인과 누르하치의 아들 홍타이지와 원숭환의 재대결도 매우 재미있다.

청 태종 홍타이지
누르하치의 8남으로 35세에 아버지 누르하치에 이어 황제로 등극한 청 태종 홍타이지는 52세로 사망할 때까지 청나라가 중국 대륙을 정복하고 지배할 수 있는 기초를 세운 황제다. [청나라 제국의 황제들] 저자가 지적하는 홍타이지의 업적은 다음과 같다.

구태정치 청산과 만족과 한족 조정, 만주족과 대청이라는 명칭 사용, 체제 완비, 홍의 대포와 포병부대 창설, 두 차례 조선 정복, 삭륜 정복, 세 차례 몽고 정벌, 다섯 차례 중원 공략.

저자는 홍타이지가 조전을 정복함으로써 일석삼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분석했다. [청나라 제국의 황제들] 저자가 홍타이지 편에서 분석하는 홍타이지의 문치(文治), 무공(武功), 모략(謨略)의 능력은 우리가 뼈저리게 반성하며 배워야 하는 내용이다. 우리에게 병자호란과 남한산성, 삼전도 치욕의 역사를 남긴 장본인이 홍타이지이기 때문이다.

순치제 푸린
갑작스러운 홍타이지의 죽음으로 인해 6세의 푸린이 어부지리로 황위에 올랐다. 청나라 역사상 유명한 소년 천자 순치제다. [청나라 제국의 황제들] 저자가 순치제 편에서 분석하는 순치제 등극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다.

새로운 황제들의 등극 과정에서 펼쳐지는 청나라 황실 내 권력 암투와 모략은 [청나라 제국의 황제들]을 재미있게 읽게 하는 독서 포인트인데 특히, 홍타이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순치제의 등극 과정은 정말 재미있다. 저자는 순치제 편에서 순치제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하늘이 내린 대청제국의 황위, 하늘이 내린 북경 천도, 원만하지 못한 모자(母子) 사이, 섭정왕의 꼭두각시로 전락한 황제, 애첩인 동악비를 따라 세상을 떠난 황제.

[청나라 제국의 황제들] 저자가 순치제를 왜 이렇게 분석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요소다. 그럼에도 순치제는 어떻게 공식적으로 중국 대륙을 정복하고 북경으로 천도할 수 있었을까? 비밀은 섭정왕 도르곤의 탁월한 역량의 능력에 있다. [청나라 제국의 황제들] 순치제 편에 섭정왕 도르곤의 활약이 생생히 담겨 있다.

산수야 출판사에서 출간한 [청나라 제국의 황제들]은 청나라 제국의 흥망성쇠와 열 두 황제들의 성공과 좌절을 살펴보며 독자에게 인생과 미래에 대한 통찰과 안목을 주는 역사서다. [청나라 제국의 황제들]과 더불어 산수야 출판사에서 출간한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와 [옹정 황제의 인간경영학]도 함께 읽어볼 만하다.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는 우리 시각에서 조선을 정복한 청 태종 홍타이지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오늘날 국가와 사회, 기업과 개인이 얻을 수 있는 교훈과 통찰을 기자 특유의 문체로 재미있게 서술하여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옹정 황제의 인간경영학]은 청나라 황제들 중 가장 개혁적인 군주로 평가받는 옹정제의 열정과 근면, 용인술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기업 경영자, 조직의 리더가 읽으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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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제국의 황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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